딸기 크림 라떼더운 날엔 달고 시원한 거라는 너의 지론에 따랐다. 이 카페 괜찮네. 작은 딸기 조각 하나를 씹지도 못하고 삼켜 버렸다. 티라미수 마카롱왠일로 이 가게에 손님이 없다며 네 손에 끌려간다. 손가락에 입술에 코코아가루를 잔뜩 묻히고, 거 봐 맛있지? 하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블루베리 요거트 케이크그렇죠. 오늘이 제 생일이고 제가 블루베리 ...
윤리 시험지 ‘한 학기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뜨거운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행? 방학 첫날, 돌림판을 돌려 나온 결과대로 여행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뜨거운 여름. 비밀스러운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자. 엄마, 나 뭐 할까? 방 청소 주사위 말고도 야광 네잎클로버 열쇠고리와 초등학생 때 일기장, 하얗게 굳...
비는 아침에만 잠깐 왔다. 우산을 챙기지 않았던 나의 안목이 결국엔 옳았다. 방학. 그래, 방학. 애들은 놀자고 했는데 딱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사실 그러지 않을 기분도 아니긴 했다. 해 밝을 때 집에 오는 것은 언제나 생소하다. 나는 하늘을 한 번, 땅을 한 번 바라본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은 파랗다. 구름도 악의가 없다. 물웅덩이에는 하늘이 ...
과학실에 앞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꼭 어항 앞을 지나치게 된다. 과학실의 2층 제일 끝에 있어서, 가로 폭이 내 두 팔 넓이는 될 네모난 어항이 벽에 딱 붙어있다. 어딘가 촌스럽다. 교장이나 교감, 아니면 나이든 생물 선생의 취향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그 어항을 좋아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입시 생활에 질려서 그런지 어쩐지 금붕어의 멍한 눈이 꺼림칙하다는...
“저기 봐, 요정 무희다! 요정 무희가 드디어 우리 마을에도 왔어!” “어쩜 저렇게 춤을 잘 추지? 작은 몸에서 저런 힘이 나오다니.” “저 신비로운 표정 좀 봐. 요정이 아니고서야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 리가 없어.” 요정 무희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작고 둥근 얼굴은 늘 상기되어 있었고, 깊은 회색 눈동자는 항상 먼 곳을 바라보...
편지를 없애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 두 사람이 마주 잡아당기는 탓에 종이의 접혔던 부분은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히샤는 곧 맥이 풀리고 말았다. 키엘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듯 간절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힘의 균형이 깨어진 탓에 키엘은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 했다. "왜 그렇게나……?" 히샤가 뱉을 ...
마법과 과학, 신의 축복이 혼재하는 이소페르트 대륙의 변방에는 변방의 마법사들이 산다. 백마법과 흑마법의 대립과 갈등에서 한 발짝 물러나 소박한 마법과 축복의 능력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예전에는 그들을 백마법과 흑마법의 중간자로서 회색 마녀, 회색 마법사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뭉뚱그려 변방 마법사로 통한다. 그 변방 마을 에놀드에서도 예술과 미가 흥...
바쁜 사무실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떨어뜨린 것은 실수였다. 굳이 내가 일부러 그럴 필요도 없을 뿐더러 따로 일을 만들지 않아도 할 일에 깔려 납작해질 지경인데. 물론 서류 뭉치를 들어 나르면서 정말로 납작해져서 2차원의 세계로 떠밀려 들어간다면 어떨까 상상하긴 했다. 서류에 내 형상이 동영상처럼 프린트될까? 아니면 내 움직임이 잔상으로 남을까? 부장의 서...
글쎄 나는, 인형 같다는 말이 싫어. 우리는 스물둘이었고 도시를 떠나 공기 맑은 곳으로 훌쩍 떠난 여름날이었다 . 물놀이도 신나게 했고 라면도 끓여 먹고 멍하니 앉아 물소리를 실컷 들었지. 매미 소리 들으며 낮잠을 자고 일어나 그런가 아닌 밤중에 잠이 오질 않아서.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모기장을 펴서는 하늘을 보고 드러누웠는데. 별빛을 안주 삼아 시원한 맥...
토요일, 오후 한 시 반. 일어나서 두 시간 동안 침대에서 휴대폰 하며 뒹굴거렸더니 슬슬 허리가 아팠다. 오늘은 무비 데이, 격주 토요일마다 다운로드 해 둔 영화를 혼자 집에서 즐기기로 정한 날이다. 나는 으따따, 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길게 기지개를 켰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오늘도 어김없이 낮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우리 집 소파 위에서 펀둥거리고 있...
바람이 내 오두막을 세차게 갈기고 지나가는 게 어언 며칠째다. 이 놈의 바람은 그칠 줄도 모른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눈보라였군. 나는 작은 창 너머의 세상을 힐끗 건너봤다. 사람은 나뿐이요 들리는 건 바람 소리뿐이다. 장승처럼 외톨이로 지난 세월을 반추하고 반추하면 글이 뱉어 낼 줄 알았다. 그럴수록 나는 헛된 후회와 부질없는 그리움 따위를 간간이 게워낼...
물 하(河), 때 시(時). 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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